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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아빠의 일본 여행

약돌이 2012. 7. 25. 17:46

 

 

[기획] 건강하고 보람된 삶 노인 힘으로 만든다 - 초고령사회, 지역의 노인복지 어떻게 할 것인가? (6)
… 일본 농촌마을 노인들의 하루 / 2005년 11월 18일 (금) | PDF (800호) 류영우 기자  ywryu@okinews.com  


10월29일. 새벽부터 내린 비가 그칠 줄 모른다. 이날은 산다시와 인접해 있는 고베시 북구 하타죠나까 주민들의 체육대회 행사가 있는 날이다. 일본 농촌 노인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노인들을 만나보기로 한 계획은 결국 무산됐다. 결국, 체육대회 무산을 핑계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한 노부부의 삶속으로 들어갔다.

◆76세의 화장품 영업소장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전날 미리 전화를 해 두어서인지, 노 부부는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나까가와 야에꼬(76) 할머니와 이를 묵묵히 바라보는 나까가와 지요시(76) 할아버지는 우리나라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취재수첩을 꺼내들고 하나 둘, 질문을 꺼내들 때까지도 일행들을 향한 야에꼬 할머니의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먼저 야에꼬 할머니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야에꼬 할머니의 친정은 고베시에서 약 40km 떨어진 사사야마시다. 21살 때 지요시 할아버지에게 시집오기 전까지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며 청년회 활동도 열심히 하는 열혈 처녀(?)였다.

할아버지를 어떻게 만나게 됐냐는 질문에 수줍은 미소와 함께 중매로 결혼했으며 결혼 전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아내의 어깨에 손 한 번 올리지 않았고, 손 한 번 잡은 적 없는 지요시 할아버지는 영락없는 우리나라 경상도 사나이(?)였다.

올해로 76세인 야에꼬 할머니는 아직까지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다. 35년 전 시작한 POLA 화장품 영업직을 이어가다 15년 전에는 한 영업소를 운영하는 책임자가 됐다.

“죽을 때 까지 일을 해야죠. 일을 해야 건강도 유지하고, 삶도 보람 있어 지는 거 아닌가요? 회사에서도 그만두라고 안해요.”

◆천직이 농사꾼
지요시 할아버지는 농사꾼이다. 지역에서도 비교적 많은 면적을 경작하고 있는 부농(?)에 속한다. 현재 지요시 할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땅은 모두 3천평. 이 중 1천500평은 농사를 짓고 있지만 나머지 땅은 주택지나 다른 농가들에게 빌려준 상태다.

“지역에서 크게 농사를 짓고 있다고 하지만 농사일로 벌어들이는 돈은 1년에 100만엔(약 1천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아요. 결국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현재 지요시 할아버지가 생산한 쌀은 10kg에 3천엔(약 3만원 정도, 우리나라는 2만5천원 선에서 거래)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가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 비싼 일본에서 농사일로 생활하기란 힘이 든다는 것이 지요시 할아버지의 얘기다. 결국 지요시 할아버지가 손을 댄 것은 바로 유통이다. 생산한 쌀을 들고 직접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농협을 통한 출하가 줄고 농민들이 직접 직매소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좀더 비싼 가격을 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생산자의 이름이 적힌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공급받을 수 있어 좋구요.”

◆농촌 주민을 위한 ‘후레아 센터’
연금제도가 잘 돼 있다는 일본이지만 농민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그리 많지 않다. 지요시 할아버지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65만엔(약 650만원)을 받고, 야에꼬 할머니는 10만엔(약 100만원)을 받는다. 회사에서 일부를 부담하는 후생연금의 경우, 농민보다 연금액이 비싸다는 것이 지요시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하지만 도시보다 생활비가 적게 들고 연금 외에 농업으로 수입을 얻고 있어 농촌의 생활이 그리 힘들지만은 않다는 것이 노부부의 얘기다.

생활이 안정되면서 농촌주민들의 눈은 여가문화로 돌려졌다. 가을걷이를 끝낸 지요시 할아버지와 야에꼬 할머니는 요즘 ‘접촉’이란 뜻을 가진 ‘후레아 센터’에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고도(일종의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의 전통악기) 모임 회장이기도 한 야에꼬 할머니는 그라운드 골프와 가라오케, 완아케(숫자가 쓰인 말뚝에 고리를 던지는 놀이), 그림편지 등 다섯 개의 취미활동에 참가하고 있다.

“회장의 역할은 강사를 섭외하고, 학생들에게 연락해서 회식을 주선하고 후레아 센터 프로그램실의 예약을 정하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후레아 센터는 10km 반경 안에 모두 9개의 작은 복지공간이 설립돼 있고, 본부 형태의 시설이 한 곳 설치돼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은 9개의 후레아 센터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한 곳에 모아 겨루는 문화축제를 개최하기도 하구요.”

지역자치단체에서는 농촌의 각 마을을 중심으로 여가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지역의 노인 조직은 이 문화공간을 이용해 스스로 문화활동을 펼쳐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베시 북구 하타죠나까에 위치한 ‘후레아 센터’ 무까이 구미꼬씨는 지역자치단체가 후레아센터의 관리를 위해 파견한 공무원이다. 노인회를 비롯해 마을 청년회, 부녀회 등 단체들의 프로그램실 공간에 대한 예약을 받고 관리하는 일이 바로 무까이 구미꼬씨의 구실이다.

“명절을 맞아 떡을 찧는 일과 크리스마스, 운동회 등의 행사의 프로그램만 기획할 뿐 후레아 센터에서 운영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노인회 자체적 활동으로 운영된다. 후레아 센터의 운영은 마을의 자치회장이 위원장이 되며 운영비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게 된다.”

후레아 센터가 노인들만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하타죠나까의 ‘후레아 센터’에는 마을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곳에도 역시 자치단체에서 파견한 교사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을 지도한다.

이곳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나카다니 리에씨는 “사회가 핵가족화 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이제 아이들을 부모가 키우기 힘들어졌다”며 “이곳에서는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공간이며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농촌마을을 중심으로 건립된 ‘후레아 센터’는 노인과 마을 청년회, 부녀회가 하나가 되고, 아이들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또 노인들 스스로 자신의 여가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농촌문화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